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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백

남양전투에서 큰 전과를 올린 의병 남강 신정백 악형에 굴하지 않고 조용히 순절하다

대황강 줄기를 타 내려가면 곡성군 죽곡면 앞을 지나려니 왼쪽 길가에 남강 신정백 의적비가 쓸쓸하게 서 있다.
이분이 바로 왜적 수십명을 사살 참살한 수가 헤아릴 수 없었다고 한 그분이다. 남강은 천성이 강직하고 지기강개하고 바르고 조리있는 말을 잘하여 동료들에게서 추앙받은 사람으로서 키가 7척이나 되고 소리가 우렁차 호랑이 같이 소리를 내며 스스로 "내게 큰 뜻이 있다"고 하였다 한다. 때는 우리나라가 일본의 강제에 못이겨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라고 우리의 손발을 묶어놓은 조약을 억지로 맺게되니 전 국민은 분통을 참을수가 없어 어찌할줄을 몰랐다.

그 중에서도 충정공 민영환의 자결, 홍만식 조병세의 분사, 황성신문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이란 논설, 전국각지의 의병활동의 봉기, 면암 최익현의 기병피체, 한일신조약 체결, 군대해산, 이완용 집 방화, 박성환 자살, 황제즉위식, 미인 스티븐슨 사살 등등 나라 내외가 어지러운 상태였으며 걷잡을 수 없이 일본놈의 학대에 참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이때 이 곡성에서도 남강 신정백는 1908년 의병장 조춘화의 예하에서 동지 수백명을 모집하여 왜적과 남양 숲속에서 싸워 왜적 수십명을 죽이고 노획한 것이 많았다. 그러다가 태안사로 진을 옮기다가 적의 야습을 받아 할 수 없이 동지들은 뒷날을 기약하고 헤어지며 혼자 왜군에 잡히어 그 무시무시한 악형을 받으면서도 끝내 굴치 아니하고 사정없이 퍼부우니 광주로 옮겼다가 다시 대구로 옮기어서도 끝끝내 굴지않고 조용히 순절 하였다.

아 슬프도다 곡성이 낳은 충신의 그 장지 장렬은 천추에 길이길이 빛날것이며 남강정신을 우리 가슴속에 길이 간직하여 그 거룩한 뜻을 추모하여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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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문화체육과
  • 담당자 이은정
  • 연락처 061-360-8481
  • 최종수정일 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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