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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건

망국의 한을 품고 자결한 소송 정재건, 동악산이 슬피울고 뜰아래 꽃이 피지 않았다고

성출봉 북쪽 줄기를 타고 내려가면 약내라는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마을앞 들판을 내려다보는 전망이 좋고 좌우로 감싸주는 언덕에 따뜻한 느낌을 주는 마을이다. 이 마을에서 곡성이 낳은 충신 소송 정재건이 태어났다. 때는 1843년(현종 9)이다. 즉 지금으로부터 160년전 분이시다. 송강 정철의 8대손으로 어려서부터 남보다 다른점이 있고 형의 과업을 등에 엎이어 듣고 기록에 착오가 없었다는 재동이라고 한다. 벼슬길에 나아가 병과에 뽑히고 부사과 성균관전적 사간원정언 통훈대부에 사헌부지평등을 지냈다.

때는 우리나라 정세는 복잡하기 한이 없어 일·러·청 등 나라에 말려들어 국운이 기울기 시작한 때다. 1894년 강화조약 이후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혁명 청일전쟁, 러일전쟁 을사조약으로 외교권박탈 통감부설치 헤이그밀사사건 고종양위 군대해산 의병봉기 이등박문사살 일 2개사단배치 헌병 2,200명 및 헌병보조원 채용 1910년 8월 22일 이완용과 한일합방조약 1910년 8월 29일 조약체결 발표로 일본은 간악하고 음흉한 수단으로 한국을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우리국민은 일시에 망국의 유민이 되고 실토유민이 되어 그야말로 부모잃고 집잃고 땅잃은 천애의 고아가 된 불쌍한 신세가 되었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쪼개지고 해가 빛을 잃고 달이 빛을 잃었도다. 천추에 한을 남겼고 삼천리 방방곡곡에 순절순국 하는 애국지사 강개지사가 많았다.

그중에 여기 소송 정재건 역시 집안 가문에 그리고 유서에 "망국의 신하로써 구태어 살 수 없다. 맹세코 명치의 세상에 있을 수 없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9월 4일에 칼을 물고 엎드리니 유혈이 낭자한지라 마침 집안 식구들이 몰려와 피를 막고 치료하니 위급을 면한지라 "자 이제는 치료된 것 같구나 다들 물러가거라 조용히 눕고 싶구나"하고 좌우를 물리치고 다시 칼을 들어 입에 물고 엎드리고 또다시 세 번째 찌르고 드디어 순절하니 슬프다 애국충신이 또 한분 가셨도다. 동악산 성출봉이 울고 뜰아래 꽃이 피지않고 말랐다고 하고 산천초목이 다 그 충절을 아는 구나 그 거룩하고 숭고한 그 "피"는 우리에게 과연 무엇을 주었으며 또 무엇을 배웠는가 그 "피"를 그 "죽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길이길이 그 성스러운 정신에 국가관 민족관의 정립에 힘을 기우려야겠다고 두손을 꼭 쥐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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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문화체육과
  • 담당자 이은정
  • 연락처 061-360-8481
  • 최종수정일 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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