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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윤

독립운동을 주동한 백당 신태윤 단군전을 세워 민족의식을 고취

전라남도 곡성군 곡성읍 동악산 삼인동에서 흘러내리는 영운천을 따라 읍근처까지 오면 봉황대위에 단정히 자리잡은 단군전이 보이고 옆에 단군전을 모신 듯이 백당 신공태윤 의적비가 있고 앞에 백당기념관이 있고 그 밑에 삼일운동기념비가 정남향으로 서 있다. 이 주인공이 바로 백당 신태윤선생의 유적들이다. 선생의 업적을 대강 나눈다면 세가지로 나눌 수 있다. 즉 단군전 건립, 삼일운동, 교육사업이라 할 수 있다.

첫째 교육사업으로서는 서울 한성사법학교를 졸업한 뒤에 곡성중학교, 광주사법학교 교수, 조선대학교 교수를 지내면서 우리나라 국사교육에 중점을 두어 학생들로 하여금 민족의식과 국사의식을 일깨워 주었으며,

둘째 단군전 건립에는 처음 삼인동 밭이랑에 단간모옥을 짓고 일본경찰의 눈을 피하여 춘추 (3.15 10.3)로 제사를 밤에 지내고 여기서 민족운동 독립운동을 꾀하였고 곳곳에 단군단을 두어 동지 지사를 모으고 또 일깨워 주었으니 삼인동 단군묘. 경상도 성주 가야산정. 전남 담양군 남면 만수동. 담양군 고서면 주평지 등에 단군단을 설단하였다.

셋째 삼일 독립운동은 1919년 3월24일 곡성의 학생 유지들과 같이 곡성 장날을 택하여 만세를 부르니 비통한 함성이요 비장한 절규였다. 그리하여 감옥살이를 치르고 나왔다. 백당선생은 일생동안을 민족운동에 몸바쳐 일제때 전국 방방곡곡에 유치장신세를 지지않는곳이 없으니 상해 임시정부 요인과의 연락이 도중에 끊어지고 만주 봉황성등지 사적시찰차 다니었으며 다시 6.10만세때 장성 신흥학교에서 부르지 못함을 원통케 하시고 광복후에 곡성군 건국준비위원으로 활약하다가 전남북 각 지방에 국사순회강연차 다니었다.

저서로는 정사 삼일신고강의 고려사절요 역사운기등이 있다. 여기서 백당 신태윤선생에게서 얻는바가 무엇이며 배울바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
첫째 선생이 일생동안을 민족운동 독립운동으로 몸을 바치었으니 그 거룩하고 굳센 집념 신념 의지에서 남자로서 무엇인가 국가 민족에게 이바지할 수 있는 "삶"의 가치를 갖는다는 것은 성스러운 것이다.
둘째 단군전 창건인데 당시 우리 겨레는 압박을 하는 실토유민이요 망국유민으로 우리가 믿을데가 어디있는냐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단군전을 건립하여 여기에서 "뜻"을 모으고 "힘"을 모아서 대동단합 단결 뭉치자는 언덕이다.
여기서 개국이념이 교육이념인 홍익인간의 이념아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민족정기를 양성시키고 민족감정을 순화시키자는 것이다.

셋째 3.1독립운동은 나라의 설움 겨레의 설움 국토의 설움에 시달린 우리겨레에 어찌 우국지사 강개지사 애국지사가 없으리오. 반만년이나 면면히 흘러내려온 배달민족 백의 민족이 아니냐. 나라를 되찾자. 겨레를 되찾자. 국토를 되찾자고 3천만 민족이 한덩어리가 되어 자유와 평화와 독립을 찾자는 운동을 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피를 흘리고 땀을 흘리고 살을 깎고 목숨을 버리고 죽는 것을 각오하면서 국내와 국외에서 독립운동을 꾀하였으니 장하지 않는가!

우리는 그 성스러운 배달정신을 이어받아 자아관 국가관 민족관을 정립해서 우리의 나아갈바를 명확히 하여 대한민국 남아로서 또는 사람으로서 "사람값"을 하자는 것이다. 남아로서 가질바 가장 큰 것이 있다면 지조 절조가 아닌가. 국가민족에 충성한다는 것이 바로 지조 절조를 지키는 것이 아닌가. 무언가 사람이란 이바지 할 수 있는 무언가 보탬이 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대로 밥만 먹고, 그대로 잔다는 것은 "삶"의 "값"이 없다. 사람으로서 사람 값을 하고 가자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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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문화체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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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락처 061-360-8481
  • 최종수정일 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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