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곡성군 SNS 바로가기

오늘의 날씨

곡성
소통

  • 페이스북
  • 유튜브
  • 블로그
  • 인스타그램
  • 카카오톡
본문
심청전 발상지 곡성열기

심청전 발상지 곡성

심청전

고대소설과 판소리의 소재는 되게 실제인물에 근거한 전승야담이나 전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보편성은 인근 남원의 춘향전처럼 심청전에도 그대로 적용되는데 설화소설이기에 일찍부터 근원설화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심청전의 핵심이야기인 효녀설화, 개안설화는 여러 유사 형태가 있지만 곡성군의 옥과현성덕산관음사사적에 나타난 연기설화만큼 효행, 인신공희, 개안이라는 구조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등장인물의 설정은 그 어느 설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유사하다.

충청도 대흥현에 살던 맹인 원량은 처를 잃고 홍장이라는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홍장은 정성으로 아버지를 모시니 그 효행이 바다건너 중국에까지 소문날 정도였다. 어느 날 홍법사 성공스님이 부처님의 계시라면서 시주를 간청하고, 논밭 한 뙤기 없었던 원량은 홍장을 딸려 보내니 아버지의 뜻에 따르는 홍장의 이별은 고을사람들은 물론 산천초목까지도 슬프게 했다.

성공스님을 따라 나선 홍장이 소랑포에서 쉬고 있을 때 진나라 황제가 황후간택을 위해 파견한 사신 일행을 만나게 되었다. 용모를 살피고 진나라 황후가 되어달라고 간청하는 사신들에게 홍장은 예물로 가져온 금은보화를 모두 스님께 드리게 하고, 사신들을 따라 진나라로 건너가 진나라 혜제의 황후가 되었다.

황후가 된 홍장은 선정을 베풀고 덕을 행하였지만 고국에 두고 온 부친을 잊지 못하여 정성을 다해 관음상을 만들어 바다건너 동국으로 보냈다. 석선에 실린 관음상은 표류 끝에 낙안포에 나온 성덕처녀의 수중에 들어갔고, 성덕처녀는 그 관음상을 업고 고향인 옥과로 와서 지금의 관음사를 창건하였다. 원량은 홍장과의 이별로 많은 눈물을 흘려 눈을 뜬 후 95세까지 복을 누렸고, 성공스님은 홍장에게 받은 예물로 큰 불사를 마쳤다.

효녀 홍장이야기는 곡성 관음사의 관음신앙과 결부되어 호남지역에서 주로 전승되다가 1729년에 문자로 정리되고,
목판본 『옥과현성덕산관음사사적』으로 대량 발행 유포되면서 대중 속으로 파고 들어갔다. 이런 과정을 거쳐 황후가 된 효녀 홍장과 그 부친 원량의 눈뜬 이야기가 누군가에 의해서 고대소설 심청전 또는 판소리 심청가로 발전하게 되었다. 홍장의 이야기가 심청전으로 전개된 것은 이웃 남원의 춘향과 성이성의 이야기가 성춘향을 내세운 춘향전으로 발전하고 변모한 것과 길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서로 인접한 곡성과 남원의 설화나 전설은 결국 조선시대의 효와 열을 구현하는 심청전과 춘향전, 심청가와 춘향가가 되어 한국 고대소설이나 판소리의 2대 명작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곡성은 심청이야기의 모델이 되는 홍장이야기가 있는 고장으로 고대소설 심청전, 판소리 심청가의 탄생지이자 발원지로서의 역사적 의의를 지닌 고장이다.

연기설화와 심청전의 관계열기

연기설화와 심청전의 관계

연기설화와 심청전의 관계

(심청전)은 그 형성적 측면에서 설화소설이기에 근원설화를 찾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어 왔는데, 최초의 언급은 1930년 10월에 발행된 『불교』제76호에 실린 만해 한용운의 글로 확인되고 있다. 여기서 만해 한용운(韓龍雲)은 (천출대효(天出大孝) 『심청(沈淸)』소저(小姐)는 『원(元)봉사』의 딸 『홍장(洪莊)』이다)라고 하여 심청전이 관음사연기설화로부터 왔음을 주장하였다.

또한 김태준(金台俊)은 1933년에 출간한 「조선소설사」에서 심청의 근원설화로 인도의〈전동자 專童子〉전설과 〈묘법동자 妙法童子> 전설 , 일본의〈소야희 小夜姬〉 및 『삼국사기』·『삼국유사』 소재 〈효녀지은설화 孝女知恩說話〉와 전라남도 곡성군의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연기설화 觀音寺緣起說話〉를 들었다. 그는 또 『삼국유사』의 〈거타지설화 居陀知說話〉와〈적성의전 翟成義傳〉·〈양풍운전 楊豊雲傳〉의 개안설화(開眼說話)를 심청전 근원설화로 언급했다.

그 후에도 장덕순(張德順)은 근원설화로 인신공희설화(人身供犧說話)와 효행설화(孝行說話)를 들고 이 중 전자가 주류를 이룬다고 말하였다. 이밖에 오구굿계 (황천무가(黃泉巫歌))와 강릉 단오제, 동해안 지방의 동제에서 불려지는 (심청굿무가)와 관련지어 무가기원설(巫歌起源說)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한편, 사재동(史在東)은 불전설화(佛典說話)에 입각하여 목련구모담(目連救母譚) · 성녀구모담(聖女救母譚) · 인욕태자구부담(忍辱太子救父譚) · 자동녀양모담(慈童女養母譚) 등을 효자불공구친설화(孝子佛供救親說話)라 명명하여 (심청전)의 근원설화로 보았다.

심청전 근원설화 연구는 김태준(1933), 장덕순(1963), 김기동(1963), 황패강(1966), 김태곤(1967), 신동일(1968), 사재동(1971), 정하영(1983) 등으로 맥을 이어오면서 심화되었다. 2000년에는 심청전이 (관음사연기설화)와 「태평광기」의 (장박전)이 합쳐진 고대소설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심청전과 관음사연기설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화엄사 고경(古鏡) 스님의 『관음사 사적과 심청전』(『불교사상』四, 옥연각 1974)이 발표되고, 이어서 권상로의『한국사찰 전서』상권(동국대학교 출판부, 1979)에 관음사 사적의 내용 수록되었다. 또한 1990년대 들어 관음사 주지스님이었던 광민스님이『심청전의 원형 관음사 연기설화』(1994)를 발간함으로써 내용을 체계적으로 보완하였고, 간송미술관 최완수 연구실장의 『성덕산 관음사』(불교춘추 1997년 1월호)에서도 관음사연기설화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또한 지인스님은 『원홍장의 아름다운 효심이 서린, 심청전의 원형, 관음사 연기설화』(관음사발행, 2001)를 간행하였고, 뒤를 이어 나온 박혜범 저 『원홍장과 심청의 만남』(도서출판 박이정, 2002년),『원홍장과 심청전』(도서출판 박이정, 2003년)에는 『관음사 사적』의 전문이 한문과 국문 대역으로 소개되었다. 아울러 관음사 사적의 충청도 대흥현 지명표기의 오류 등을 지적하고, 홍장은 곡성출신임을 명백히 하면서, 심청전의 작가가 옥과현감이었던 하서 김인후 선생이라는 주장 등 다양한 의견을 피력하였다.

이 밖에도 허원기의 『심청전 근원설화의 전반적 검토』에서는 관음사연기설화가 심청전의 근원설화 중 가장 유사하다는 주장을 폈으며, 최근에 발간되는 연구서적들은 관음사연기설화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는 송광사 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목판본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 사적』이 학자들에게 공개되면서 심청전과의 친연성은 더욱더 긴밀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연기설화와 심청전의 비교열기

구성요소와 등장인물

홍장 이야기는 사찰연기설화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심청전과 그 성격이 매우 유사하며 심청전의 가장 중요한 내용인 효행, 인신공희, 개안이 모두 나타난다. 등장인물도 효녀 홍장과 효녀 심청, 아버지인 원봉사와 심봉사, 홍법사 화주승과 몽은사 화주승, 진(晋)나라 사신과 남경상인, 진나라 황제와 송나라 천자 등 서로가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므로 관음사연기설화와 심청전은 구성요소와 등장인물의 성격이 유사하다.

사실과 허구의 논점

홍장 이야기 중 “저희는 진나라 사람이온데 영강 정해년 오월 신유일에 황후께서 돌아가시고(使者曰 俉晋國人也永康丁亥五月辛酉皇后崩)”를 분석하면 서진 영강년으로 서기 300년이며, 공간적 배경은 대흥에서 시작해 옥과 관음사에서 끝난다. 그러나 심청전은 소설본, 창본, 가사체, 무가 등 80종류가 넘는 이본이 있으며, 시간적 공간적 배경뿐만 아니라 내용도 조금씩 다르다. 경판본은 대명성화 남군 땅 또는 남섬주부로 설정되어 있고, 심봉사는 심현, 죽은 어머니 정씨부인, 도움을 주는 장자댁부인, 심청이 뛰어든 바다는 유리국 인단소이다.
송동본과 완판계열, 창본은 송 원풍, 송나라 말년, 황주 도화동이 우세하고 양주 도화동과 당나라 유리국, 송나라 유리국도 보인다. 심봉사는 심학규(심학구, 심학귀)가 우세하고 심학효, 심평규란 이름도 있으며, 어머니는 곽씨부인, 도움을 주는 분은 김장자, 장승상, 바다명은 인당수(인단수, 님강수, 임당수)로 설정되어 있다.
관음사연기설화는 사실에 근거한 기록이지만, 심청전은 인당수 등 허구적 요소를 가미해 흥미롭게 창작이 반복된 소설이다.

기록시점과 시대적 배경

홍장 이야기는 관음사 창건과 관련된 내용을 1729년 백매자스님이 기록한 것으로 서기 300년의 이야기이다. 심청전은 작자미상에 쓰여진 연대도 알 수 없지만, 심청전이라는 세 글자가 나타난 최초의 기록은 조수삼(1762년~1849년)의 추재기이(秋齋紀異)로 알려져 있으며, 소설의 시대배경은 대명성화(1465년) 또는 송 원풍(1078년)이다. 그러므로 기록시점과 이야기의 시대 배경에 있어서 관음사연기설화가 심청전보다 훨씬 앞서고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심청전은 어느 날 갑자기 창작된 것이라기보다는 관음사연기설화 홍장 이야기를 근간으로 재구성 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효녀 홍장 이야기가 곡성 관음사의 관음신앙과 결부되어 권선문으로 오랜 세월동안 전승되면서 목판 등으로 활자화되어 다량 유포되었고, 다시 효와 열을 구현하는 18세기말의 시대분위기를 반영해 심청전으로 발전했으며, 심청전의 무대배경이 중국으로 설정된 것 또한 정치적인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작가의 픽션이라는 주장도 있다.

콘텐츠관리

  • 담당부서 문화체육과
  • 담당자 고대승
  • 연락처 061-360-8462
  • 최종수정일 2023-02-10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국가상징 보기
추천곡성
섬진강
기차마을
곡성
교육포털
곡성몰
농특산물
중개몰
곡성
귀농귀촌
곡성군
청년센터
곡성일자리
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