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곡성군 SNS 바로가기

오늘의 날씨

곡성
소통

  • 페이스북
  • 유튜브
  • 블로그
  • 인스타그램
  • 카카오톡
본문
근원설화 문제열기

근원설화 문제

앞서 살펴본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 사적』을 바탕으로 『심청가』 또는 『심청전』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심청가』 또는 『심청전』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에 대해서는 여러 근원설화가 거론되고 있으나 여타 근원설화와 달리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 사적』의 경우 기본적인 줄거리 상에서 상당한 일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것이 『심청가』 또는 『심청전』의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대체로 동의하고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는 그 중 대표적인 한 견해를 소개하고자 한다.

허원기는 『심청전 근원설화의 전반적 검토-원홍장 이야기의 위상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 사적』을 비롯하여 ‘황천무가 바리공주’, ‘심청굿 무가 사설’, ‘효녀지은설화’, ‘거타지설화’ 등 국내 근원설화와 인도의 ‘전동자 · 법묘장자설화’, ‘목련존자설화’, 일본의 ‘소야희설화’ 등 국외 근원설화를 두루 검토한 뒤,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 사적』이 『심청전』과 가장 가까운 근원설화임을 밝히고 있는데, 이 논문의 맺음말에 정리된 핵심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홍장이야기’는 사찰연기설화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이 부분을 제거해내면 『심청전』과 그 성격이 매우 유사하고 전승 시기와 전승 장소로 볼 때도 소설 『심청전』 및 판소리 『심청가』와 매우 깊은 관련성을 지닌다.

‘홍장이야기’는 서사적인 면에서 『심청전』과 더욱 깊은 관련성을 지닌다. 『심청전』의 가장 중요한 서사적 화소라 할 수 있는 효행화소, 인신공희화소, 개안화소가 모두 나타난다. 등장인물도 효녀 심청과 효녀 원홍장, 아버지인 심봉사와 원봉사, 몽은사(또는 개법당) 화주승과 홍법사 화주승 성공, 남경상인과 중국사신, 중국의 황제 등은 서로 같은 기능을 서사적으로 수행하는 인물들로 동질성을 지니고 있다.

‘홍장이야기’는 상황 묘사와 감정 묘사에 뛰어나고, 대동사회를 추구하는 주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판소리계소설로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심청전과 심청가의 형성열기

심청가와 심청전의 형성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 사적』은 『심청가』 또는 『심청전』과 스토리 차원의 유사성이 발견된다. 따라서 『심청가』 또는 『심청전』은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 사적』을 바탕으로 하면서 여기에 다른 이야기의 모티프들이 관여하여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 사적』은 그 동안 구전되어 내려오던 이야기와 절에서 보유하던 기록을 종합하여 1729년에 간행되었다. 이 해에 사적기를 간행한 것은 대대적인 불사를 완성한 후 관음사 창건의 역사를 정리하여 이를 널리 알려야겠다는 목적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을 고려할 때 관음사 연기 설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구전되어 왔지만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 사적』의 간행을 계기로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관음사 창건과 관련된 홍장 이야기가 널리 퍼진 18세기 전반기 어느 무렵에 곡성 일대의 판소리 창자에 의해 판소리 『심청가』가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 사적』이 『심청가』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질적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 사적』과 『심청가』 사이에는 아래에서 보는 것과 같은 중대한 차이가 존재한다.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 사적과 심청가 내용 비교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 사적과 심청가 내용 비교 정보를 제공하며 구분,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 사적, 심청가 등의 항목으로 구성된 표
구 분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 사적 심청가
주인공의 출생 기록 여부 원홍장의 출생 기록이 없다. 심청의 출생과 관련된 내용이 비교적 자세히 그려져 있다.
주인공 부친의 시주 목적 불교적 보시의 차원 심봉사 자신의 개안(開眼)
주인공이 황후가 되는 과정 자신을 모시러 온 중국 사자와 함께
중국에 가 황후가 됨
인당수에 몸을 던진 후 용궁에 갔다가 꽃을 타고
황실에 들어가 황후가 됨
황후가 된 뒤의 행적 수많은 불사를 행함 맹인잔치를 열어 부친과 상봉함

이런 차이는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 사적』이 사찰연기담인데 비해 『심청가』는 판소리 작품이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 사적』은 사찰연기담이므로 관음사가 창건된 내력만 설명하면 된다. 따라서 개인의 생애사나 가족사로 이야기가 전개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를 바탕으로 판소리 작품을 구상하게 될 경우 사정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판소리는 신성한 종교적 이야기가 아닌, 평범한 인간의 세속적 삶을 문제 삼는다. 따라서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 사적』의 원홍장 스토리를 서사적 골격으로 차용하지만 전반적인 이야기의 구성은 세속적인 인간의 이야기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이런 점에서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의 이름을 변경할 것, 주인공의 일대기 위주로 이야기를 구성할 것, 극적 효과를 위해 주인공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사건이나 맹인잔치에서 부친과 상봉하는 장면 등을 추가할 것과 같은 변화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이런 변화의 요청을 적극 반영한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 판소리 『심청가』라 할 수 있다.

『옥과현 성덕산 관음사 사적』이 『심청가』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변화 중 가장 큰 변화는 주인공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사건을 새로 설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기존에는 <태평광기> 소재 장박의 이야기 또는 인신공희설화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해 왔다. 그러나 이들이 『심청가』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장박의 이야기는 멈춘 배를 움직이게 하기 위해 처녀를 희생 제물로 바친다는 점에서는 유사성이 있으나 살아 돌아온 처녀가 죽기 전과 달라진 점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청가』와 차이가 있다. 인신공희설화의 경우 영웅과 악신의 싸움에서 영웅이 승리하여 처녀를 구출하고 인신을 제물로 바치는 관습을 근절하게 된다는 것이 중심인데, 『심청가』에서는 처녀를 희생 제물로 바치는 행위만 나타날 뿐 악신과의 싸움 및 인신을 제물로 바치는 관습을 근절하는 사건은 나타나지 않는다.

『심청가』의 심청은 가난한 소녀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황후가 된다. 죽기 전에는 아무런 힘이 없는 존재였는데, 다시 살아나서는 힘이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이런 심청의 죽음과 부활은 강신무(降神巫)의 입무과정(入巫過程)에서 흔히 나타나는 타계여행 테마와 동일한 성격을 지닌다. 강신무 후보자는 천상이나 용궁과 같은 타계로 건너가서 신을 만나고, 신으로부터 무(巫)의 사명 또는 능력을 받아 이승으로 귀환하는데, 심청의 용궁 여행과 귀환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심청이 황후가 되었다는 것은 심청에게 만민을 보살피는 사명이 주어졌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또한 심청을 만나자 부친(또는 참석한 모든 맹인들)이 눈을 떴다는 것은 심청에게 병을 낫게 하는 치유 능력이 주어졌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므로 심청 역시 입무과정을 거쳐 무(巫)가 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결국 심청의 죽음과 부활에는 입무과정의 타계여행 테마가 수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심청의 죽음과 부활에 입무과정의 타계여행 테마가 수용되었다는 것은 『심청가』의 형성에 무조신화(巫祖神話)의 성격을 지닌 서사무가가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서사무가 중 무조신화의 성격을 가장 뚜렷이 보여주며, 『심청가』가 형성된 조선후기 당시에 왕성히 전승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것은 『바리공주』이다. 이에 『바리공주』와 『심청가』를 비교해 보면 구체적인 소재, 배경, 사건 등에는 차이가 있지만 서사 전반의 흐름과 각 서사단락의 핵심적인 의미가 일치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심청가』의 형성에 호남지방에서 전승되던 서사무가 『바리공주』가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판소리 선행설’을 크게 뒷받침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8세기 전반 곡성 일대에서 형성된 판소리 『심청가』는 전라도 전역으로 확대되어 불리다가 19세기에 이르면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서도 불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대한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유리국’ 또는 ‘유리국 도화동’으로 존재하던 공간적 배경이 ‘황주 도화동’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시간적 배경의 경우 아예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 나중에 ‘대명 성화’ 또는 ‘송나라 원풍’ 등으로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숱한 더늠들이 추가됨으로써 사설의 내용이 훨씬 풍부해지고 구체화되었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불리게 되면서 각 지역별로 서로 다른 사승 관계가 나타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사설 전승이나 장단 붙임에 차이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 강산제 등의 유파가 생겨나게 되었다.

판소리 『심청가』가 크나큰 인기를 누리게 되면서 이것이 방각본 출판으로 이어져 소설 『심청전』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 중 완판은 판소리 창본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아 판소리 사설본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경판은 판소리 창본과 상당한 차이가 있으며 문체 또한 판소리체나 가사체가 아닌 완전한 문장체로 되어 있다. 이런 점 때문에 판소리와 관계없이 설화가 곧바로 소설화한 것으로 보고 ‘소설 선행설’을 주장하는 근거로 삼아 왔다. 그러나 경판이 보여주는 줄거리 위주의 단순성, 비합리적인 요소를 최대한 제거하고 지나치게 합리성을 추구한 것 등은 오히려 복잡하고 산만한 판소리 『심청가』에 불만을 가진 누군가가 단순 명료하게 문장체로 정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도 있다. 학계는 소설 선행설과 판소리 선행설로 나눠져 있다.

심청전 경판본과 원판본열기

심청전 경판본과 완판본

경판 24장본의 내용을 살펴보면, 명나라 성화연간에 남군땅의 명유(名儒) 심현이 부인 정씨와 살았다. 혈육이 없어 걱정하였는데 신몽을 꾸고 심청을 낳는다. 청이 3세 되는 해에 정씨가 득병하여 세상을 떠나고, 심현도 질병을 얻고 안질을 앓아 맹인이 된다. 맹인 심현의 애육을 받은 심청은 7,8세부터 효성으로 아버지를 봉양한다. 13세 된 심청이 장자집의 방아를 찧어주고 늦어지자 심공이 혼자 나가다가 구렁에 빠진다. 이때 명월산 운심동 개법당의 화주승이 그를 구해주고 공양미 300석을 시주하면 장래에 부녀 영화를 보리라 한다. 이 말을 들은 심공은 전후사를 생각하지 않고 신심을 발하여 시주를 서약한다.

남몰래 고민하는 아버지의 사정을 들은 심청은 천지신명께 지성으로 고축한다. 그날 밤 노승의 현몽을 얻은 청은 날 밝기를 기다린다. 과연 남경상고가 유리국 인단소에 산 사람으로 제사하려고 티 없는 처녀를 사러 다닌다. 심청은 수중고혼이 되기로 결심하고 기꺼이 몸을 팔아 백미 300석을 부처님께 바친다. 행선 날에 아버지에게 사실을 알리고 떠나려하자 심공은 통곡하며 만류한다. 이 광경을 본 상고들은 수일을 연기하여주고 백미 50석을 더 주고 떠난다.

인단소에 빠진 심청은 동해용왕의 시녀들에게 구조되어 용궁으로 인도된다. 심청은 회생약을 먹고 깨어나 자신이 전생에 초간왕의 귀녀 규성(동해용녀)이었고, 아버지는 노군성이었음을 알게 된다. 또 그동안 모든 괴로움이 석가세존의 시험이었음도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비로운 세존의 덕으로 부녀가 유리국에 나아가 영귀하게 되리라는 것도 듣게 된다. 큰 꽃송이 속에 들어 인단소에 떠 있던 심청은 남경상고들에 의하여 유리국 왕궁으로 가게 된다. 물 속에서 나온 심청은 마침내 왕후가 되어 자비와 선정을 베풀도록 왕을 돕고, 아버지를 찾기 위하여 맹인잔치를 열게 한다. 맹인잔치 마지막 날 말석에 앉았던 심공은 죽었던 딸을 만나고 그 딸이 왕후가 되었다는 말에 눈을 뜬다. 심공은 좌승상 임한의 딸을 맞아 재혼하니 신부의 현숙함과 심공의 희열이 비할 데 없었다.

경판본에서는 출천대효(出天大孝) 심청과 그의 아버지 심학규가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심청은 오직 눈먼 아버지에게 지효(至孝)를 다하다가 인당수에 투신하며, 투신 이후에도 아버지를 만나기 위한 일념만을 보인다. 심봉사 역시 딸만을 위하여 살 뿐이며, 심청의 투신 이후에도 심청만을 생각하며 초라하게 살아간다. 경판본의 작자는 작품 전체에 지효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전력하고 있으며, 따라서 작품분위기는 처량한 엄숙성을 보인다. 심청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제시된다. 경판본은 유교적 엄숙성과 숙명론적 운명관에 지배되고 있다.

완판본은 경판본보다 훨씬 더 많은 등장인물과 사건을 담고 있다. 완판본에는 무릉촌 장승상 부인, 뺑덕어미, 귀덕어미, 무릉촌 태수, 방아 찧는 아낙네들, 황봉사. 안씨 맹인 등의 인물들이 더 등장한다. 이들 중 대부분은 작품의 후반부에 등장하여 심봉사를 희화화시키는 기능을 담당한다. 장승상 부인은 심청에게 양녀 되기를 제안하고 또 심청의 죽음을 통한 효의 실현에 반대한다. 즉 장승상 부인은 심청이 추구하는 유교적 관념에 이의를 제기하고 현실적 해결방법을 내놓는 인물로서 기능한다. 뺑덕어미는 심청과는 정반대로 현실적이고 물질지향적인 인물로서 심봉사를 현실적이고 비속한 인물로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다.

심청은 경판본이나 완판본이나 성격이 크게 다르게 나타나지 않으나, 심봉사는 두 본에서 성격이 아주 다른 인물로 나타난다. 경판본의 심봉사는 시종여일하게 유교적 이념에 충실한 인물인데 반하여, 완판본의 심봉사는 훨씬 세속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인물로 나타난다. 그는 누세 잠영지족으로 문명이 자자한 양반집 후예였으나 화주승에게 공양미를 시주하겠다고 할 때는 “여보시오 어느 쇠 아들 놈이 부처님께 적어놓고 빈말하겠소. 눈 뜰라다가 안진뱅이 되게요, 사람만 업수이 여기난고 염려말고 적으시오.”하고 말하는 위인이다. 그는 또 천하의 잡녀(雜女)인 뺑덕어미와 놀아나다가 “여러 해 주린 판이라 그 중의 실낙은 있어 아모란 줄을 모르고 가산이 점점 퇴패”하는 치졸한 인물이다.

심청의 투신 이후의 심봉사에게는 투신 이전에 지녔던 위엄은 사라지고, 태수 앞에서 허풍과 억지를 부리는 못난이며, 방아 찧는 여인네와 음담(淫談)을 즐기는 비속한 인물이다. 이러한 인물들로 인하여 완판본은 유교적 엄숙성이나 숙명론적 운명관에 지배되지 않는다. 완판본은 유교적 효를 지켜야 할 규범으로 받아들이고는 있으나, 한편으로 당대 현실에 대해서 회의적이며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완판본에는 관념적 가치와 현실적 가치가 서로 갈등하며 대립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이것은 다른 판소리계 소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공통된 특성이다.

경판본과 완판본의 구성양식을 비교해보면, 전자는 내용에 따라 단순, 소박하고 차분하게 짜여진 양식을 지니고 있으나, 후자는 풍성한 내용에 따라 복잡, 장황하고 들떠 있는 양식을 가지고 있다. 문체에 있어서는, 경판본의 것이 과거의 전아한 멋을 지닌 간결, 소박한 산문체인 데 비하여, 완판본의 것은 푸짐한 형용사나 감탄사는 물론, 삽입가요 · 잔사설 · 고사성어 · 한시 등을 끌어들여 부연, 윤색된 율문체이다.[민중소설로서 심청전](심영란) 중에서 발췌

심청전의 주제와 배경사상열기

심청전의 주제와 배경사상

(심청전)의 주제는 효라는 것이 통설이다. 여기서 효가 유교적 효냐 불교적 효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된다. 한편, 효보다는 심청의 자기희생에 초점을 맞추어 '살신성효(殺身成孝)를 통한 무상의 행복에의 추구', '아버지의 신체적 불구를 회복시키기 위한 딸의 대속적 자기희생(代贖的自己犧牲)의 앙양'을 주제로 내세우기도 하였다. 그리고 불교적 측면에서 효보다는 더 근원적인 희생적 참회, 비원에 의한 무상(無上)의 제도(濟度), 즉 절대적 불공에 따른 '왕생극락(往生極樂)'이 주제로 제시되기도 하였다.

또 (심청전)을 성년식 소설로 보고, 심청이 무지(無知) · 무명(無明)으로부터 깨어나 인식과 각성에 이름으로써 잃어버린 자아를 발견, 회복시켜 나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주제 논의는 주로 경판 24장본을 대상으로 하여 행하여진 것이다. 판소리계 소설인 완판본의 주제는 두개로 이야기된다. 즉, '영웅의 일생'이라는 전승적 유형을 충실히 따르는 부분에서는 유교이념을 긍정하는 부수적 관념론의 입장이 제시되고, 판소리로 불리면서 새로이 첨가된 부분에서는 유교이념을 부정하는 진보적 현실주의의 입장이 제시되어 있다. 이렇게 서로 상반되는 두개의 주제가 상호 갈등하면서 공존해 있는 것이 완판본 (심청전)의 한계이자 특성인 것으로 지적된다.

(심청전)의 배경사상으로는 불교와 도교사상으로 지적되고 있다. 불교를 배경사상으로 보는 이들은 불교의 인과사상과 지은보은사상(知恩報恩思想)을 든다. 이에 대하여 설화적 구성에 있어서는 불교적 요소가 보이나 그 창작의식에 있어서는 철저히 반불교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공양미 300석은 어떠한 효험도 나타내주지 않았고, 몽운사의 화주승은 혹세무민의 비방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또 작품의 전반은 유교의 효와 불교의 영험사상이 혼합되어 인과사상으로 귀결된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민중소설로서 심청전](심영란) 중에서 발췌

심청전의 종류열기

심청전의 종류

(심청전)은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목판본과 구활자본, 필사본 등 80여 종의 異本이 있으며, 활판본의 대부분이 9~10판까지 찍어낸 점으로 보아 근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각 이본들은 같은 제목을 달고 있지만 내용에 있어 대부분 차이점을 보이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삽화가 생략되거나 첨가되며 그 내용이 완전히 다른 것들도 있다. 지금까지 발굴 소개된 이본들을 형식에 따라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목판본
  • 翰南本 계열: 한남본(경판 심청전 24장본), 大英A본(경판 24장본), 大英B본(경판 26장본)
  • 宋洞本 계열: 송동본(경판 심청전 20장본)과 安城本(안성판 심청전 21장본)
  • 完板本 계열: 완판A(심청전 71장본), 완판B(완판A와 같으나 刊記 삭제), 완판 C(판형은 완판A와 같으나 내용 변용), 완판D(AB본의 판각과 같으나 8장만을 보각함), 완판E(AB본의 판본 4장은 그대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개각), 완판F(E의 판본을 그대로 쓰되 AB의 판본 4장을 개각)가 있습니다.
필사본
  • 국립도서관 필사본 <심청전> 23장본(國圖寫A본)
  • 일사본 필사본 <심청전> 42장본(一蓑本)
  • 국립도서관 필사본 <심청전> 59장본(국도사B본)
  • 가람본 필사본 <심청전> 46장본(嘉藍本)
  • 신재효본 판소리 사설 <沈睛歌>(신재효본)
  • 가람본 <심청녹> 하권 30장본(심청록)
  • 고려대도서관 필사본 <沈淸傳> 상권 27장본(고대A본)
  • 고려대도서관 필사본 <沈淸傳> 53장본(고대B본)
  • 강전섭 소장 필사본 <심청전> 44장본(강전섭본)
  • 김형주 소장 <회중 심청전>(1) 50장본(김형주본)
활판본
  • 광동서국, 신구서림본 <江上蓮: 이해조 작>(강상본) : 1912~1914
  • 신문관본 <심청전>(신문관본) : 1913
  • 광동서국, 박문서관, 한성서관본 <沈淸傳>(광동본) : 1915~1922
  • 박문서관본 <沈淸傳>(夢金島傳) : 1916
  • 대창서간본 <贈像演訂 沈淸傳: 홍순모 작>(대창본) :1920
  • 회동서관본 <沈淸傳>(회동본) : 1925
  • 태화서관본 <萬古孝女 沈淸傳: 강하형 작>(태화본) : 1928
  • 시문당서점, 해동서관본 <심청전>(시문당본) : 1928
  • 대성서림본 <도상 沈淸傳: 강은형 작>(대성본) : 1928
  • 세창서관보 <古代小說 沈淸傳>(세창본) : 1934
  • 영화출판사본 <沈淸傳>(영화본) : 1954
심청전의 줄거리열기

심청전의 줄거리

송나라 말년 황주 도화동이란 곳에 양반의 후예로 행실이 훌륭한 심학규라는 봉사가 곽씨 부인과 살고 있었다. 심학규와 곽씨 부인은 불전에 지성으로 불공을 드린 끝에 딸 심청을 낳았으나 곽씨 부인은 산후 조리를 잘못하여 심청을 낳은 후 7일 만에 죽고 만다. 마을 사람들은 부인의 인품을 기려 장례를 치러주고, 젖동냥을 다니는 심봉사를 측은히 여겨 심청에게 젖을 먹여 준다. 심청은 잔병 없이 성장하여 인물과 효행이 인근에 자자할 정도였으며, 열다섯 살이 되어서는 길쌈과 삯바느질로 아버지를 극진히 공양한다.

성품이 뛰어나고 재주가 비범한 심청을 장승상 부인은 수양딸로 삼고자 하나 심청은 아버지를 생각하고 거절한다. 어느 날 이웃집에 방아를 찧어주러 갔다가 늦어지는 심청을 찾아 나선 심봉사는 실족하여 그만 웅덩이에 빠지는 봉변을 당한다. 이때 마침 그 곳을 지나던 몽은사 화주승이 그를 구해주고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면 눈을 뜰 수 있다고 하자, 심봉사는 앞뒤 가리지 않고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겠노라고 서약한다. 자신의 어리석은 약속을 남몰래 후회하는 심봉사의 고민을 알게 된 심청은 마침 인신공양을 구하러 다니는 남경 상인들에게 자신의 몸을 팔고 그 대가로 받은 공양미 삼백 석을 몽은사에 시주한다.

아버지가 걱정하지 않도록 장승상댁 수양딸로 가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하던 심청은 행선날이 되어서야 아버지에게 사실을 고하며 하직 인사를 하는데, 뒤늦게 전후 사정을 알게 된 심봉사는 통곡하며 실신한다. 남경 상인들의 배를 타고 인당수에 당도한 심청은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걱정하면서 인당수에 뛰어든다.

바다에 뛰어든 심청은 용궁으로 모셔지며, 후한 대접을 받고 자신의 전생과 현세, 미래를 알게 되며,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 곽씨 부인을 만난다. 용궁에서 하루를 지낸 심청은 연꽃 속에 들어가 다시 인간세상으로 돌아오며, 남경 상인들은 귀국하던 중 바다에 떠 있는 연꽃을 이상히 여겨 송나라 천자에게 바친다.

천자는 연꽃 속에서 나온 심청을 아내로 맞이하고, 황후가 된 심청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맹인 잔치를 벌인다. 심청이 떠나고 난 뒤 뺑덕어멈과 같이 살던 심봉사는 잔치 소문을 듣고 황성으로 향한다. 도중에 뺑덕어멈의 농간으로 온갖 우여곡절을 겪는 끝에 겨우 상경한 심봉사는 맹인 잔치에서 황후가 된 심청을 만나 크게 감격하여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콘텐츠관리

  • 담당부서 문화체육과
  • 담당자 이승종
  • 연락처 061-360-8463
  • 최종수정일 2022-01-04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태극기
추천곡성
섬진강
기차마을
곡성
교육포털
농특산물
중개몰
곡성
귀농귀촌
곡성일자리
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