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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장군 : 고려개국공신(高麗開國功臣) 장절공(壯節公)

신숭겸장군은 평산신씨(平山申氏)의 시조이며 호는 장절공(壯節公)으로써 고려시대 개국공신이다.
처음에 이름은 능산(能山)으로 야사기록에 의하면 서기 877년(신라)이곳 욕내군(곡성군 목사동면 구룡리 - 현, 용산재)에서 출생하였는데 태어나면서부터 몸은 장대하고 천성이 용맹스러웠으며 활쏘는 재주와 무예가 뛰어나 장사다운 자질을 갖추었다. 태봉(泰封)의 기장(騎將)으로 있을때인 서기 918년 6월 홍유(洪儒), 배현경(裵玄慶),복지겸(卜智謙)등과 의논하여 궁예(弓裔)를 몰아내고 태조 왕건을 받들어 고려를 개국한 개국공신이다. 927년(고려 태조 10) 가을 후백제가 신라를 공격하자 태조는 신라를 돕기 위해 대구 팔공산(당시에는 공산) 전투에 참가하였다가 수가 많은 후백제군에게 포위를 당해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으며,이때 태조와 비슷한 용모를 갖춘 신숭겸장군이 왕의 복장을 하고 대신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였다. 이후 태조는 공의 시신을 찾아내어 통곡하며,광해주 비방동(현, 춘천시 비방동)에 예장한 다음 직접 제례를 지내고 그 자리에 순절단(殉節壇)을 모시고 대구지방에 지묘사(智妙寺)라는 절을 지어 공의 명복을 빌게 하였고, 봉분셋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1120년(예종15)에 신숭겸과 감락장군을 추모하는 도이장가(悼二將歌)라는 향가를 지어 찬양케 하였다. 현재 곡성의 덕양사과 용산재, 대구의 표충사, 춘천의 도포서원(道浦書院), 평산의 태백산성사(太白山城祠), 동양서원 등에 배향되고 있다.

유적지소개

용산재(목사동면 구룡리 - 지방기념물 제56호)

신숭겸장군의 태생지로 용산재에는 구룡문과 용산재, 동서재, 고직사, 비, 용산단과 장군상이 있다. 2003년에 완공 계획으로 추진중인 용산재 성역화사업은 경내지 확장과 홍살문, 동·서재, 교직사, 내·외삼문을 건립할 계획으로 사업이 완료되면 군인들의 학습장으로 활용됨은 물론이며 신숭겸장군과 관련된 유적지의 메카로 부상될 전망이다.

신유봉(申遊峰)

죽곡면에 있는 해발 665M의 산으로 신숭겸장군이 무예를 익혔던 봉우리이다. 타고 다니던 말의 능력을 시험키위해 반대편 봉우리를 향해 활을 쏜 다음 말을 달려 봉우리에 도착해 보니 화살이 없어 화살이 이미 이곳을 지나간 것으로 판단하여 타고 다니던 말의 목을 배려할 때 화살이 떨어져서 말을 구하였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화장산(華藏山)철갑옷 바위

화장산은 죽곡면에 있는 해발 525M의 산으로 신숭겸장군이 이곳에서 무예를 익혔으며 당시 입었던 갑옷을 숨겨두었다는 바위[鐵甲岩]가 있는데 어느날 나무꾼 총각이 이옷을 발견하여 호기심에 입어 보려 하자 바위에 몸이 달라 붙어 3일만에 떨어졌다하며, 일제시대에 왜경들이「전설이란 허무한 것이다」하여 망치로 바위를 부수니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고 풍우가 몰아치니 혼비백산하여 돌아갔다하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화장산 장군천(華藏山 將軍泉)

화장산 중턱에 있는 우물로써 신숭겸장군이 산에서 무예를 닦다가 목이 마르면 마시던 샘이다. 금으로 만든 복지깨(물그릇)이 항상 물위에 떠 있었다고 하는데 이상한 것은 어떤 사람이 이 금복지깨로 물을 마시다가 금복지개가 입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고 3일만에 떨어졌다고 전하기도 한다.

용소, 용탄, 용암, 용마(龍沼, 龍灘, 龍岩, 龍馬)

보성강(대황강- 大荒江)가운데 여울과 소(沼)와 바위가 있으며 이 소에서 신숭겸장군이 목욕하였다는 곳이라하여 용소(龍沼)라고 이름하고 그여울 역시 용탄(龍灘)이라 하며 여울곁에 있는 큰바위를 용암(龍岩)이라고 하였다. 여기 바위가 물속에 뻗어 큰바위를 이루고 그 바위밑에 큰 굴이 있어 용마(龍馬)가 출입한 것을 신장군이 잡아 탔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 바위에 용마(龍馬)발자국이 있고 말구시(말밥통)이 있으며 신장군이 목욕할 때 등을 문질렀다는 반들 반들한 바위가 있다.

덕양사 - 오곡면 덕산리 : 지방기념물 제56호

1589년(선조 22)에 본군 현감 신옥(申沃)이 본도 관찰사,도내외 후손과 협의하여 창건하였으며 학문을 닦고 지방의 풍속을 장려하여, 선현의 충절을 일깨우는 등 교화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이후 여러차례 중수하였고 1695년(숙종 21) 윤세기(尹世紀)가 조정에 상소하여 사액서원으로 되었다. 1871년(고종 8)때 서원 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으나 1937년 전라도 후손에 의해 강당, 연서재(燕序齋), 덕양사, 신덕재, 전사청, 외삼문, 내삼문을 중건하였으며 1981년 목사동면에 소재한 용산재와 함께 전라남도 지방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되었다.

용자(龍字)이름

신숭겸장군의 활동지인 목사동면(木寺洞面)과 보성강변(일명 대황강)등에 용자(龍字)의 지명이 많음. 용소, 용탄, 용암(龍沼,龍灘,龍岩)과 지명상 구룡리(九龍里), 용사리 (龍司里), 용정리(龍井里)등이 신유봉(申遊峰), 선주산(仙住山)이며 화장산(華藏山)임.

장절공 영적비(태안사 입구)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의 영적비로 1937년 건립되었다. 태안사 입구 상가 앞 보호각 속에 세워져 있다.

관외 유적지

장절공 묘소(춘천시 서면 방동리)-지방 기념물 제21호

장절공의 묘소는 광주산맥의 일지(一支)인 화악산으로 소양강을 굽어 보는 곳으로 도선국사가 일찍이 고려 태조의 신후지지(身後之地)로 정해 놓은 곳에 예정되었다. 1805년(순조 5)에 신도비(神道碑)를 세웠다가 1894년(고종 31)에 사회제도 개혁안에 의해 수묘군제(守墓軍制)가 철폐되었다. 1959년 재실(齋室)을 신축하고 1967년에 구·재실을 증·개축하였으며 1968년 묘전(墓前) 확장공사 등을 하였으며 현재의 묘역은 1975년 지방문화재로 지정됨에 따라 영당(影堂)을 신축하고 신도비각(神道碑閣)을 중수하였다.

장절공 묘소(춘천시 서면 방동리)-지방 기념물 제21호

장군의 영정은 고려궁전에 보존해 오던 것을 1427년(세종 9) 8월 10일 왕명에 의해 묻어 버리고, 대구 지묘사에 봉안해 오던 것을 절이 폐사 뒤에 대비사에 옮겨 봉안해 오다가 서기 1819년(순조 19)에 절과 함께 불타버렸다. 서기 1977년 12월에 김기창 화백의 휘호로 다시 제작하여 서기 1977년에 장절사를 짓고 봉안하였다. 건물 양식은 고려초 영주 부석사 조사당을 모방하였다.

순절단(殉節壇)(대구광역시 동구 지소동)-지방기념물 제1호

927년(고려 태조 10) 장절공이 공산 동수싸움에서 태조대신에 전사한 곳에 태조가 단을 모아 표지하였던 곳으로 일명 표충단으로 서기 1982년 3월 4일 기념물로 지정됨.

표충사(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 지방기념물 제14호

장절공을 모신 사당으로 1607년(선조 40)에 사우를 창건하여 재향하였고 1672년(현종 13)에 사액(賜額)되었다. 1676년(숙종 2)에 고려 좌상 김락장군 등을 배향하였다가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다. 단(壇)은 고려 초에 봉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재사(齋舍)는 1888년(고종 25)에 창건하고 표충재라 하였다. 1974년 순절단 충열비 및 표충재가 지방기념물 제14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궁위방(弓位坊)

고려 태조가 어느날 평주(平州) 황해도 평산(黃海道 評山)으로 사냥을 갔다가 삼한에 이르렀을 무렵 기러기 세 마리가 하늘 높이날아 맴돌고 있는지라 태조가「누가 저 기러기를 쏘겠는가?」하니 장절공이 나서서 「신이 쏘리다.몇째 기러기를 쏘리까?」 하였고 태조는 「셋째 기러기 왼쪽 날개를 쏘라」 하였다. 공이 명하는대로 활을 쏘아 맞히니 태조가 탄복하여 평주(平州) 평산(評山)로 공(公)의 관향을 삼게하고 아울러 기러기가 맴돌던 근방의 땅 300결을 하사하고 그 땅을 궁위전(弓位田)이라 명하고 그 고장 이름도 궁위방(弓位坊)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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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문화체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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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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