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곡성군 SNS 바로가기

오늘의 날씨

곡성
소통

  • 페이스북
  • 유튜브
  • 블로그
  • 인스타그램
  • 카카오톡
본문

조통

조통은 신종(神宗)때 사람으로, 자는 역락(亦樂)이다. 체구가 컸으며, 경사백가(經史百家)에 통달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다.
진사에 급제하고 여러번 옮겨서 고공랑(考功郎) 태자문학(太子文學)이 되어 봉사(奉使)로 금(金)나라에 갔는데, 마침 추궁하고 힐문하는 일이 있어 3년을 억류되어 있었다. 금인(金人)이 그 재주를 사랑하고 그 절개를 가상히 여겨 귀보(歸報)하도록 명령하였다. 오래지 않아 서경유수(西京留守)를 맡아서 나갔는데, 성품이 관대하고 어질며 공검(恭儉)하고 믿음으로써 사람을 대하였다. 벼슬이 한림학사지제고(翰林學士知制誥)에 이르렀다.
살고 있는 초가집이 소쇄하여 쓰러지니 당세의 이름 있는 벼슬아치들이 날마다 서로 따랐다. 평장(平章) 최당(崔讜) 및 명사인 고영중, 이세장, 최선 등 무릇 9인과 기로회를 만들고 형상을 그려서 돌에 새겼다.
이 때 사람들이 ‘지상의 신선’이라고 말했다. 쌍명 이인로가 통을 부르길 ‘산수우(山水友)’라고 하면서 증시(贈詩) 하기를,

도주공이 월 나라의 재상이 되었으나
한 척의 조각배로 바다에 떠갔고
사안석이 진 나라 조정에 있었으나
운치있게 동산의 달을 완상하였네
지금 나와 그대가 있으니
어찌 벼슬을 아끼리오
동해의 금을 모두 흩어 버리고
서산의 고사리나 캐러 가세

라고 하였다.
이때 송의 황실이 남천(南遷)을 하여 신주(神州)가 육침(陸沈)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죽어서는 옥과의 성황신이 되었다.

콘텐츠관리

  • 담당부서 문화체육과
  • 담당자 이은정
  • 연락처 061-360-8481
  • 최종수정일 2022-01-20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추천곡성
섬진강
기차마을
곡성
교육포털
농특산물
중개몰
곡성
귀농귀촌
곡성일자리
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