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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민겸

임란때 혁혁한 공훈을 세운 두암 심민겸

심민겸은 청성백(靑城伯) 덕부(德符)의 8세손이고, 경기감사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영돈녕부사 망세정(忘世亭) 선(璿)의 5세손이다. 자는 사윤(士允)이고, 호는 두암(杜菴)으로 청송인이다. 어렸을 때부터 용기와 담력이 남달랐고, 부모를 모심에 지극히 효도하였으며, 일찍이 경사에 통달하였는데, 항상 말하길 “평생 학문한 것은 충효 두 글자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임진왜란 때 포의(布衣)로서 의병을 일으켜 원수 권율을 따라 독성산성과 행주산성에서 부역하며, 군량미의 운반이 끊어지지 않게 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는 남원이 포위당하자 용맹을 떨쳐 진중으로 돌격하다 총에 맞았으며 겨우 소생하였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 곧바로 예빈주부(禮賓主簿)에 제수되었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때에는 의곡(義穀)을 모으고 군기(軍器)를 갖추어서 공주로 향하였는데, 난이 이미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왔다. 정묘호란 때에는 동궁을 호종하여 진폐(陳弊)의 상소를 올렸는데, 비답에 ‘가상하구나. 네가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도다.’라고 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정축년에는 또 의곡을 모아서 강화도로 운송하였으며, 강화(講和)가 이루어진 후 다시 설욕할 방책을 진달하는 상소를 올리고 다시는 벼슬하지 않았다. 두암의 충성을 길이 추모하기 위하여 나주 충장사, 곡성 두암사에 모시고 제향을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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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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