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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배

정묘호란이라고 하면 후금의 침입으로 일어난 우리나라와 후금사이의 싸움이다. 인조 즉위후 집권한 서인의 친명정책과 후금 태종의 조선을 먼저 공략하겠다는 정책의 충돌에 기인된 것이다. 곧 명이 후금을 치기 위하여 만주로 출병하였을 때 그 요청에 못이겨 강홍립에게 1만의 군대를 주어 원조케 하였다.

그러나 형편을 보아 향배하라는 밀지를 받고 명군이 불리하자 후금에 항복하였다. 이때 사계 김장생의 막하에 들어 청주 황주에서 기공을 세웠다. 또 다시 임신전에 또 원하여 출군하니 "인신이 되어 불충하고 불효하면 사람으로서 행세할 수 없다. 내 지금 부모님이 안계시니 효를 다하지 못하고 주상 이몽진 즉 피난해 계시니 어찌 충성치 않으랴"하고 안주싸움에서 공을 세우고 전사하였다. 부인완산이씨의 열녀기사는 장을 달리 하였다. 남자의 할 일이 예나 지금이나 "사람노릇"을 한다면 충·효 이외에 뭐가 있겠는가. 일심헌의 굳은 결심에서 장부의 기상을 보였고 사람의 행실을 배웠다. 집안과 나라, 나라와 집안은 절대적인 유대관계가 있다.
효는 곧 충이요, 충은 곧 효니 효도라면 충이 되고 충을 하면 효가 된다하는 일체감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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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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