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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모

기유왜적 내습에 희생을 무릅쓰고 수천면민의 생명을 보전한 심암 양원모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내가 소란한때 1909년 기유에 심암공이 곡성군 목사동 직강(기금의 면장직)으로 있을 때 영병장 조규하 노인선이 인솔한 창의부대가 보성 순천지방으로부터 진주하여 목사동 전주산에 진을 치고 군세를 확장하는중 군량을 비롯하여 떡쌀 집세기 감발등 필수품을 제공하고 극비밀리에 관내 부락 양병과 군세보강을 추진하는 중 4월 중순경에 구례주재 왜병7명이 수색차 선주산에 올라다가 조규하 휘하 부대에게 발견되어 교전 끝에 왜병 7명이 몰사당하였다. 그뒤 구례헌병대가 출동하여 선주산에서 왜병시체 7구를 발견하고 의병과 전투 끝에 의병은 총기부족으로 패주하고 조규하의병장도 전사 하였다.

왜병들은 기세당당히 마을로 내려와 부락민을 닥치는 대로 죽이려하니 심암공이 비장한 각오로 "이마을 의병은 다 외지에서 온 사람으로서 주민들로서는 혹 술과 밥을 제공한 것이 무슨죄냐?"하니 왜장이 노기가 충천하여 하는 말이 "우리 군사 7명이 전사보고를 왜 아니했으며 의병에게 보급했으며 얼마나 하였느냐?"고 고문하였으나 시종 대답하지 않으니 공을 큰소나무에 거꾸로 매달고 혀가 빠지도록 구타하니 기절한지라 내려놓고 물 세통을 가져와 코에 부어도 아무 감각이 없는지라 죽은 것으로 인정하고 배위에 모닥불을 놓고가니 마을사람들이 동수 신대일씨와 같이 와서 모닥불을 헤치고 공을 업고 집에 돌아오니 소생의 희망이 있는지라 그날밤 즉시 범계리(약3km) 외가 손씨 댁에 옮기고 약 한달동안 치료하다가 다시 남원 수지 산정리의 양씨세각으로 옮기어 일년동안 치료하고 다시 남원 주생 이언 집에서 가료하였다.

교리 윤상섭씨가 위로하기를 "장하도다 그대여 일신의 함구로 희생을 당하였으니 수천면민이 화를 면하여 생명을 보전케 하였으니 이상 더한 장하고 쾌한 일이 어디 있느냐!"하고 극구 위로 겸 찬양하였다. 아! 장하다! 그 충성은 일신을 희생하면서 민족의 생명을 구하니 그 충정은 길이 빛날것이며 특히 목사동면민들이 뼈속에 깊이 새겨 영원히 숭모하여야 할 것이로다. 그 심암정신을 추모하기 위하여 면사무소앞 길가에 의적비를 1963년 3월 10일 수백 유림들이 세웠다. 아마도 영평대신 이저구가 전라도 관찰사때 "목사동 청룡안에 수변인목이 가활만인이라 예언하였는데 공을 두고 한말이 아닌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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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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