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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명

거짓 미쳐 경술국치의 울분을 달래보는 설초 김용명

1910년 경술년에 일본이 강제로 우리나라를 합병하니 전 국민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울분과 통분을 못이겨 울고 불고 자살하고 비밀결사를 만들고 의병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나라안이 어수선하여 어쩔줄 모르고 헤메이니 참으로 망국의 설움 실토의 설움을 무엇으로 달랠 길이 없었다. 조정 에는 왜놈 정치가며 왜놈 군대며 친일파 매국노들이 들끓고 꼬리를 치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 곳 곡성에서도 옥과 용두리에 사는 설초 김용명은 비분강개한 나머지 자결코자 하였으나 황제가 계시니 다시 복군될 날이 있을 것이라고 마음을 돌리고 거짓 미쳐서 소리쳐 울면서 거리를 헤매며 왜놈을 욕하고 합방을 반대하고 매국노를 죽이라고 외치며 다니니 날마다 아니 10년간을 미친 행세로 울며 서러워하였다.

1919년 정월달에 고종황제가 승하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는 나라가 망하고 임금까지 돌아가셨으니 무엇을 바라리오"하고 대성 통곡하며 집 후원에 단을 모우고 석달을 한결같이 슬픔을 못잊어 통곡하였다. 고종 인산때 즉 3월 1일 설산에 올라가 북향사배하고 또 통곡하고 내려와 집안 선산에가 하직을 고하고 통곡하고 집 후원으로 돌아와 단 아래 조용히 앉아 통곡을 금치 못하여 목에 칼을 세 번 찌르고 다시 배를 세 번 갈라 끝내 성스러운 피를 흘리고 순절하셨다. 때는 3월 10일(음력 2월 6일)이었다. 아 슬프다. 설초는 57세를 일기로 그 지긋지긋한 망국한을 달래지 못하고 가시니 그 영령에 명복을 빌고 그 거룩한 충절을 어찌 다 갚으리오. 참으로 장렬하도다.

마을 사람들이 그 충절을 추모하여 순절비를 세우니 이 설초 정신을 길이길이 받들어 이 비 앞에 맹세하노니 국가민족을 위하여 다시 한번 이바지 할 것을.......

설초 선생은 아명을 기순이라고 하며 집이 가난하여 나무를 해다 팔아 생활하니 마을 사람들이 설산초부라 하고 유림들은 설초 선생이라고 하였다. 선생은 충민공 탁영 김일손의 후예로써 남원에서 살다가 옥과 용두리로 이사 하였으니 용두리가 바로 낳으신 곳이다. 선생은 젊어서 호매하시고 나라를 걱정하고 강개의 뜻있는 애국지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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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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