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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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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면 지명유래

봉동리, 함안리, 봉서리, 오봉리, 율촌리, 단사리, 사리, 조양리, 반석리, 용계리, 탑동리, 선세리, 작천리, 성덕리, 관음사리, 가곡리, 청단리, 초현리, 연화리, 안평리, 운곡리 지명유래
봉동1구 부들마을
물길따라 출렁이는 바다의 해초(海草)같은 ‘부들’처럼 기운이 감도는 곳이라 하여 부들포(蒲)자와 벌판평(坪)자를 써서 포평(蒲坪) 또는 자연마을명으로 ‘부들마을’이라 부르다가 1895년에는 화석리(火石里)로 개칭(改稱)하였으며, 1908년에는 화대리(火垈里)라 칭하였다. 1914년 화대리(火垈里), 후촌(厚村), 함안(咸安), 오봉촌(梧峯村)을 병합(倂合)하여 봉동리(鳳洞里)로 개칭(改稱)되고 1982년 행정구역 개편(改編)에 따라 봉동1리(鳳洞1里)로 바꾸어 현재에 이르렀다.
봉동2구 함안(咸安)마을
‘오지봉(梧枝奉)에는 봉황대(鳳凰臺)가 있고, 봉서동(鳳棲洞)이 동쪽에 있으므로 모든 일이 평안(平安)하게 잘 될 것이다’고 하여 함안(咸安)이라 하였다 한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화대(火垈), 후촌(厚村), 오봉(梧奉), 함안(咸安), 단산(丹山) 일부를 병합(倂合)하여 봉동리(鳳洞里)라 하였고, 1982년 행정구역 개편(改編)에 따라 봉동2리(鳳洞2里)가 되었다.
봉동3구 봉서(鳳捿)마을
‘봉(鳳)이 봉동산(鳳洞山)에서 산란(産卵)하고 서생(棲生)하였다’하여 봉서동(鳳棲洞)으로 칭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화대(火垈), 후촌(厚村), 오봉(梧峯), 함안(咸安), 단산(丹山) 일부를 병합(倂合)하여 봉동리(鳳洞里)라 하였고, 1982년 행정구역 개편(改編)에 따라 봉동3리(鳳洞3里)가 되었다.
봉동4구 오봉(梧鳳)마을
‘오지봉(梧枝峯) 산 밑에 있다’하여 그 지명을 본 따 오봉촌(梧峯村)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화대(火垈), 후촌(厚村), 오봉촌(梧峯村), 함안(咸安), 단산(丹山)일부를 병합(倂合)하여 봉동리(鳳洞里)라 하였고, 1982년 행정구역 개편(改編)에 따라 봉동4리(鳳洞4里)가 되었다.
율천리 율천(栗川)마을
밤내울, 밤내 또는 율천(栗川)이라 불렀는데, 1908년 창평군 화면에 편입되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율천리(栗川里)라 칭하고 곡성군 화면(火面, 현 오산면)에 편입되었다.
단사1구 단사(丹士)마을
오지봉(梧枝峯) 산 아래의 단산(丹山)에는 오동나무가 많아 봉(鳳)이 서식(棲息)하였다고 하여 단산(丹山)이라고 칭(稱)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단산리(丹山里)와 사리(士里)가 병합(倂合)하여 단사리(丹士里)라 하였다.
단사2구 사리(士里)마을
본래, 옥과군(玉果郡) 화석면(火石面) 지역인데 1908년 창평군(昌坪郡) 화면(火面)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行政區域) 폐합(廢合)에 따라 단산리(丹山里)와 사리(士里)를 합하여 곡성군(谷城郡) 화면(火面)에 편입되었다. 주계원이 정착한 후 그를 따르는 여러 선비들과 묵객들이 찾아들어 마을명을 ‘선비촌’으로 불러오다‘사리(士里)’로 명명하게 되었다.
조양1구 조양(朝陽)마을
‘봉(鳳)이 단산(丹山)에서 나와 아침볕에 운다’하여 ‘조양(朝陽)’이라 명명했으며 속칭 ‘지량촌’이라고도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行政區域) 폐합(廢合)에 따라 조양리(朝陽里), 용계리(龍溪里), 탑동리(塔洞 里), 선세리(善世里) 일부를 병합(倂合)하여 조양리(朝陽里)라 하였는데 1982년 행정구역 개편(改編)에 따라 조양1리(朝陽1里)가 되었다.
조양2구 용계(龍溪)마을
마을앞‘시냇가 쏘에서 용(龍)이 하늘로 올라갔다’하여 ‘용계(龍溪)’라 칭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行政區域) 폐합(廢合)에 따라 조양리(朝陽里), 용계리(龍溪里), 탑동(塔洞), 선세리(善世里) 일부를 병합(倂合)하여 조양리(朝陽里)라 하였는데 1982년 행정구역 개편(改編)에 따라 조양2리(朝陽2里)로 되었다.
조양3구 탑동(塔洞)마을
산간(山間)마을로서 뒤로는 ‘기우재(騎牛峙)’가 우뚝솟아 있고 앞으로는 ‘와우산(臥牛山)’이 가로놓여 있다. 마을앞에 탑(塔)이 있어 탑동(塔洞)이라 칭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行政區域) 폐합(廢合)에 따라 조양리(朝陽里)라 하였는데 1982년 행정구역 개편(改編)에 따라 조양3리(朝陽3里)로 되었다.
선세1구 작천(鵲川)마을
작산(鵲山) 밑에 위치(位置)하고 마을 앞쪽으로 냇가(川)가 흐른다 하여 작천(鵲川)이라 칭하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行政區域) 폐합(廢合)에 따라 작천(鵲川), 동구(洞口)를 병합하여 선세리(善世里)라 하였으며 1982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작천, 선세리를 합하여 선세1리(善世1里)라 하였다. 그러나 2002년 1월 14일 행정구역 분할에 따라 선세리 마을과 다시 분리 되었다.
선세2구 선세(善世)마을
마을뒤에 칠봉(七峯)이 있어 이를 본 따 마을 이름을 무봉촌(撫峯村) 이라 칭하다가 한때는 ‘샛터’라고 칭하고 작산(鵲山) 밑에 위치(位置)하고 있어 작천(鵲川)이라 칭하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行政區域) 폐합(廢合)에 따라 작천(鵲川), 동구(洞口)를 병합하여 선세리(善世里)라 하였으며 1982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작천, 선세리를 합하여 선세1리(善世1里)라 하였다. 그러나 2002년 1월 14일 행정구역 분할에 따라 작천리 마을과 다시 분리 되었다.
선세3구 성덕(聖德)마을
관음사(觀音寺) 골짜기에 성덕산(聖德山)이라 부르는 산이 있어 그 지명을 따라 성덕리(聖德里)라 하였다. 1908년 창평군(昌平郡) 화면(火面)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行政區域) 폐합(廢合)에 따라 작천(鵲川), 동구(洞口), 주암마을을 병합하여 선세리(善世里)라 칭했다. 1982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관음사, 성덕리를 합하여 선세2리(善世1里)라 하였다. 그러나 2002년 1월 14일 행정구역 분할에 따라 관음사 마을과 다시 분리 되었다.
선세4구 관음사(觀音寺)마을
마을 위쪽에 관음사(觀音寺)가 자리잡고 있어 붙여진 마을명칭으로 원래 관음사 주변에 40여호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으나 1970년대 절 아래쪽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현 마을터로 옮기게 되었다. 2002. 1. 14. 행정구역 분할에 따라 선세3구와 분리되었다.
가곡리 가곡(柯谷)마을
마을 주위의 산세가 ‘낄 개(介)’자 형태와 닮았다고 하여 ‘개동(介洞)’이라 칭하였다. 한편으로는 주민들이 ‘가실(柯室)’이라고도 불러왔기 때문에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마을 윗뜸의 ‘응곡(鷹谷)’을 병합하여 ‘가곡리(柯谷里)’라 칭(稱)하게 되었다.
청단1구 초현(招賢)마을
‘마을앞 꾀꼬리봉(峰)의 버드나무(柳)에서 꾀꼬리가 서식(棲息)하며 울었다’하여 ‘유정(柳頂)’또는 ‘초현동(招賢洞)’이라고도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아랫마을 청단리(靑丹里)와 병합하여 청단리(靑丹里)라 칭(稱)하게 되었으며, 1982년 행정구역 개칭에 따라 청단1리(靑丹1里)로 분리되었다.
청단2구 청단(靑丹)마을
옥과군 화석면 지역으로써 청단(靑丹)이라 하였는데 1908년 창평군 화면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廢合)에 따라 윗마을 초현동(招賢洞)과 병합하여 청단리(靑丹里)라 칭(稱)하게 되어 곡성군 화면(오산면)에 편입되었다. 1982년 행정구역 개칭에 따라 청단2리(靑丹2里)로 분리되었다.
연화1구 연화(蓮花)마을
본래 옥과군(玉果郡) 화석면(火石面) 지역으로 ‘연산(蓮山, 도산천)밑에 자리잡고 있다’ 하여 ‘여름태’, ‘마을 터가 연화도수(蓮花渡水) 형국이다’ 하여 ‘연화동(蓮花洞)’ 또는 ‘연화(蓮花)’라 불렀다. 1908년 한때 창평군(昌平郡) 화석면(火石面)에 편입되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通廢合) 당시 연실, 하청단과 피암 상청단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연화리(蓮花里)라 명명하고 곡성군 화면(谷城郡火面)에 편입되었다. 1982년 행정구역개편(行政區域改編)에 의하여 연화1리(蓮花1里)가 되었다.
연화2구 안평(鴈坪)마을
청단리(靑丹里)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서 하청단리(下靑丹里)라고 칭하다가 1908년 창평군 화석면(昌平郡火石面)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연실, 하청(下靑)과 피암, 상청(上靑)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연화리(蓮花里)라 명명하고 곡성군 화면(火面)에 편입되었으며, 1982년 행정구역 개편(行政區域改編)에 의하여 연화2리(蓮花2里)가 되었다. ‘하청단리’라 칭하다가 ‘안평리(鴈坪里)’로 개칭되었다.
운곡1구 운곡(雲谷)마을
마을뒤에 있는 좁은 계곡이 무이산(武夷山)까지 뻗어 있기에 세곡(細谷)이라 칭하였다. 또한 구름이 늘 끼어 있으므로 ‘구름실’ 또는 ‘운곡(雲谷)’이라 불러 왔다. 1908년 창평군(昌平郡) 화면(火面)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사, 삼봉, 내운(內雲), 외운(外雲), 피암 일부와 옥산면의 율사동 일부를 병합하여 운곡리(雲谷里)라 명명하였으며, 1982년 행정구역 개편(行政區域改編)에 의하여 운곡1리(雲谷1里)가 되었다.
운곡2구 운곡(雲谷)마을
마을뒤에 있는 무이산 기슭과 앞산인 옥녀봉에 구름이 늘 끼어 있으므로 ‘구름실’ 또는 ‘운곡(雲谷)’이라 불러 왔다. 1908년 창평군(昌平郡) 화면(火面)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사, 삼봉, 내운(內雲), 외운(外雲), 피암 일부와 옥산면의 율사동 일부를 병합하여 운곡리(雲谷里)라 명명하였으며, 1982년 행정구역 개편(行政區域改編)에 의하여 운곡2리(雲谷2里)가 되었다. 마을지형이 거북이가 언덕을 기어 올라가는 형국이라 하여 ‘등구(嶝龜)’라 부르고 있다.
운곡3구 운곡(雲谷)마을
이 지역은 오산면과 옥과면 그리고 담양군 무정면을 이어주는 국도 15호선이 지나는 교통의 요지로써 점차 상가가 형성되어 발전되어 가는 지역으로 일명 ‘오산 삼거리’라고도 부른다. 2002. 1. 14. 행정구역 분할에 따라 운곡2구와 분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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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4-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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