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곡성군 SNS 바로가기

오늘의 날씨

곡성
소통

  • 페이스북
  • 유튜브
  • 블로그
  • 인스타그램
  • 카카오톡
본문

마천목 장군

1358년 고려 공민왕 7년에 장흥군모원촌지원에서 태어나 15세 되던 해에 부모를 따라 곡성군 오지리 당산촌으로 이거해옴으로써 곡성사람이 되었다. 장군의 효성은 너무도 지극하고 간절하여 도깨비를 감동시켰다는 섬진강 상류 두계천(杜溪川)에 얽힌 전설에는 효성에 감동한 도깨비들이 돌로 강을 막아 어살을 만들어서 많은 고기를 잡아 부모를 봉양했다는 것으로 '마천목장군의 도깨비 살'로 통한다.

원래 신체가 강건해 힘과 무예가 출중하였고 경서(經書)에도 능통했다고 한다. 23세인 1381년(고려 우왕 7)에 산원(散員)으로 임명받으면서 처음으로 공직에 발을 들였고, 1394년(태조 3) 37세되던 해에 정7품인 사직의 자리에서 봉직하였는데 이때는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조선조를 세우고 태조가 된지 7년차 되었으나 아직 왕권이 확립되지 못하여 왕자들끼리 왕권쟁탈을 위하여 골육상쟁의 피를 흘릴때였다. 1398년 '제1차 왕자의 난'에 방원을 도와 공훈을 세워 상장군의 직위를 받았다.

1400년(정종 2) '제2차 왕자의 난'에 방간의 편에선 박포를 사로잡아 난을 성공적으로 평정한 공로를 인정받아 좌명공신의 녹훈과 함께 회령군(會寧君)에 책봉되면서 동지총제로 승진하였다.

태종때 노모봉양을 위하여 전라도 도 절제사로 보냈다가 4년후 59세되던 1416년(태종 16)에 초대 전라병마절도사로 부임하여 전라병영성을 축조하고 61세때에 다시 내대위절제사(內待衛節制使)로 옮기고 세종조에 병조판서 판우군 도총제부사 집현전대제학겸삼군부사, 추증숭록대부장흥부원군, 추증숭록대부영돈령부사겸중추부사로 승차되었다가 1431년(세종 13)에 74세를 일기로 생을 마치었다.

유적지소개

충정묘(忠靖廟)
  • 소재지 : 곡성군 석곡면 방송리 방주마을
  • 건립년대 : 1438년(세종 20), 1810년(순조 10) 중수, 1922년 재중수
  • 재향일 : 1월 24일

74세의 일기로 1431년(세종13) 생을 마쳤을 때 세종은 제문, 춘추제향축문을 내려보냈고 1437년(세종 19)에는 예장묘소 사방 10리를 사패지로 하사하여 제향에 도움을 주도록 명하였으며 곡성 석곡 방주동에 부조묘를 건립하고 대대로 지키도록 명하였다.
현재 충정묘는 바로 이 부조묘로서 1438년(세종20) 초창되었다. 현재의 이름인 충정묘는 세조3년(1457)에 충정이라는 시호를 내림으로서 불려지게 된 이름이다.

영모재(永慕齋)
  • 소재지 :곡성군 석곡면 방송리 방주마을
  • 건립년대 : 1922년
  • 장군의 묘소입구에 있으며 예장 묘소의 제향을 위한 재실이다.

콘텐츠관리

  • 담당부서 문화체육과
  • 담당자 이은정
  • 연락처 061-360-8481
  • 최종수정일 2022-01-20
만족도 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추천곡성
섬진강
기차마을
곡성
교육포털
농특산물
중개몰
곡성
귀농귀촌
곡성일자리
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