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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팽로

금산전에서 장렬히 전사한 월파 유팽로

옥과에서 옥과천을 따라 무창리를 지나 옥과천 하류 합강리에 다다른다. 이 합강리마을 가운데 초라하게 서있는 합강사가 쓸쓸하게 있고 옥과천 건너 송전리에 외로이 의마총이 보인다.
이것이 바로 월파 유팽로장군과 부인 원주김씨를 모신 자리로 애마요 의마의 말 무덤이다. 월파장군은 나면서부터 영특하고 부모에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월사 이정구 청음 김상헌과 도의로써 사귀며 사마 양시에 합격하고 문과에 올라 홍문정자 및 성균관 학유까지 지냈다.
그후 늙으신 부모님을 뫼시기 위해 관직을 사퇴하고 고향에 돌아오는 지극한 효성을 지니신 분이시다.

조정에 소장을 올려 논하니 "우리나라의 걱정에 북쪽이 편안하면 남쪽이 걱정이요, 남쪽이 편안한면 북쪽이 걱정이라. 그러나 북쪽이 걱정이면 전하 및 신하들은 같이 보지도 않고, 남쪽이 걱정이면 일이 급해도 전하는 보지 않는다." 라고 하고 또 중봉 조헌의 상소와 같이 왜승 현소가 우리나라에 온 것을 사람들은 "일없이 왔다 일없이 간다"하나 신은 "할일 있어 왔다가 할 일 있어 갔다"고 하여 청컨대 살피소서" 하니 이는 지금의 간첩행위와 같아 이로 인하여 적군이 대거 들어올 것이라 나라의 장래를 크게 걱정하였다.

1592년 임진 4월 13일 왜군이 대거 부산에 상륙하여 부산동래을 함락시키고 한달이 못되어 서울 평양까지 진격하니 참으로 한심하도다. 우리나라의 무방비상태를 어찌할 줄 모르고 그저 남의 힘만 빌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이 강산을 하루아침에 짓밟힐지언정 우국지사 애국지사가 사방에서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니 곡성의 월파 유팽로 장군이 의기를 드니 한달이 못되어 500여명 이상의 모이는지라.

드디어 양대박과 같이 합사하여 담양에 가서 제봉 고경명을 맹주로 의병장을 삼고 금산싸움으로 나아갔다. 왜군들은 호남의 요새지 전주를 치고자 금산에 진을 쳤든 것이다. 고경명을 대장으로 모시고 왜군과 싸우니 적은 우리의 후속부대가 없는줄 알고 치열한 반격을 가해와 유장군은 적의 포위망을 뚫고 빠져 나왔으나 제봉대장은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하고 신변이 대단히 위태로 왔다.

그때 월파장군은 대장을 구하려고 적진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이때 마부 김충남이 말고삐를 잡고 만류하니 장군은 "내가 대장을 구하지 않으면 누가 구하겠느냐?"하며 말고삐를 잡은 충남의 팔을 칼로치고 가려고 하니 충남은 다시 왼손으로 말고삐를 잡으니 다시 왼손마저 쳐버리고 적진으로 들어가 두겹 세겹으로 에워싼 가운데 힘껏 싸우다가 아깝게도 전사하였다. 이 싸움에 고경명 부자가 다함께 순절하니 그 위국 충절은 만고에 빛날 것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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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일 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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