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심민각
심민각은 청성백(靑城伯) 덕부(德符)의 9세손이, 경기감사 증 대광보국숭록대부 영돈녕부사 망세정(忘世亭) 선(璿)의 6세손이다. 자는 숙선(叔先)이고, 호는 구암(龜岩)으로 청송인이다. 지기(志氣)가 강개하며, 부모를 섬기길 지극한 효로 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으로 인조 임금이 공주로 파천을 하자 민각이 격문을 내어 의병을 모집하고, 가동(家僮) 및 모은 의병 900여명과 함께 주야로 위난을 구제하러 나아갔다. 운봉현감 황일호와 여산부사 송(宋)과 함께 행진이 천안에 도착하여 진을 치고 있다가 역로(驛路)에서 대가(大駕)를 몸소 맞이하였다. 이것보다 먼저 그 매부인 좌방어사 학성군 김완과 함께 적개(敵愾)하여 근왕의 계책을 세웠는데, 이에 이르러 서로 응하였다. 인조가 주둔하고 있는 진중에서 병방승지(兵房承旨)에 임명하여 어가(御駕) 앞에서 성명을 올렸다. 병인년에 공의(公議)로 근왕한 사람들을 소계(疏啓)하였는데, 논상에 의해 특별히 청안현감에 제수되었다. 병자호란 때는 임시로 청수영장수사(淸水營將水使)를 맡아서 강화도로 군량미를 운송하였다. 난이 이미 평정되자 증산현감(甑山縣監)에 제수되었고, 또 영유현령(永柔縣令)에 제수되었다.
콘텐츠관리
- 담당부서 문화체육과
- 담당팀 문화재관리
- 연락처 061-360-8482
- 최종수정일 2022-01-20